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런데도 나는 사주를 보고, 운세를 본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답을 원했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실 거라고 믿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은 조용하셨다.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내 삶은 계속해서 불확실했고, 나는 초조해졌다.
이 길이 맞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나에게 다가올 미래가 어떤지…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직접 대답해주시지 않으니, 다른 방법으로라도 안심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사람은 왜 사주를 보고 운세를 궁금해할까? (심리학적 관점)
✔ 불확실성을 견디기 힘들어서
인간은 원래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미래가 불안할 때, 확실한 답을 원하게 되고, 그래서 운세나 사주를 보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본능’**이라고 설명한다.
즉,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라도, 누군가 “이 길이 맞다”라고 말해주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진다.
✔ 위로받고 싶어서
내가 사주를 본 이유도 이것이었다.
누군가 내 앞날이 괜찮을 거라고, 잘 풀릴 거라고, 지금 내가 힘든 것도 과정일 뿐이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왜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 위로를 기대하지 못했을까?
😞 나는 왜 외로운 걸까? 왜 주변 사람들은 나를 위로해주지 못할까?
나는 요즘 내가 외롭다고 느낀다.
주변에는 가족도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진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 내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져서
✔ 설명해도 내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어서
✔ 혹은, 말하기도 전에 지쳐버려서
사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사랑할지 몰라도, 나를 이해해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가끔 내 고민을 말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괜찮아질 거야", "다 그런 거야" 같은 흔한 말들뿐이다.
하지만 내 불안과 고민은 그렇게 간단한 위로 한마디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점점 더 말하기가 싫어졌고, 결국 내 감정은 혼자 삭여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다른 곳에서 위로를 찾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친구에게서, 누군가는 심리 상담에서, 그리고 나는… 사주를 보거나 운세를 찾아보기도 했다.
💡 그럼, 나는 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사주를 본 걸까?
사실 나도 안다.
사주나 운세를 본다고 해서 미래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세를 검색하고, 나의 앞날이 괜찮을지 묻고 싶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나는 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주신다고 하지만, 나는 그 응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불안했고, 초조했고, 어딘가에서라도 확신을 얻고 싶었다.
사주는 미래를 예측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불안을 해소하고 나를 위로해주는 도구처럼 느껴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답을 찾아 헤매는 과정조차도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걸까?
내가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지 못하고 다른 방법을 찾고 있지만, 결국 그 끝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찾을 것이라는 걸…
어쩌면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신 게 아닐까?
📌 결론 –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여전히 외롭고, 여전히 불안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방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답을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더 단단해질 것이라는 것.
나처럼 외로운 사람, 답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너의 고민과 방황도 의미 없는 게 아니야."
"괜찮아. 우리는 결국 답을 찾을 거야."